보르도 그랑크뤼 10년 이상 숙성해야 ‘제맛’/나파밸리 와인 영한 빈티지도 바로 마시기 좋아/
같은 빈티지로 30년뒤 재대결서도 나파밸리 ‘완승’/나파밸리 심장 오크빌 투 칼론에서 빚는
‘컬트 와인’ 슈레이더/‘영빈’도 마시기 좋지만 ‘올빈’은 맛과 향 극대화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파리의 심판’. 프랑스 ‘5대 샤토’인 그랑크뤼 클라세 1등급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오브리옹 등 프랑스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인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맞붙은
와인업계의 유명한 사건이죠. 당시만 해도 나파밸리는 그저 그런 싸구려 테이블 와인이나 만드는 와인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나파밸리 와인은 화이트와 레드에서 모두 1위를 휩씁니다. 고급와인의 기준은 프랑스였기에
대회 결과는 프랑스 와인업계는 물론, 전세계 와인업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대회를 마치고 일부 심사위원을 중심으로 프랑스 와인에 아주 불리한 대회였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당시 프랑스와 나파밸리 와인은 거의 비슷한 빈티지로 맞붙었습니다. 레드 와인의 경우 보르도는 1970∼1971 빈티지,
나파밸리는 1969∼1973 빈티지입니다. 화이트 와인도 1972∼1973 빈티지로 비슷합니다. 뛰어난 기후 덕분에
포도가 잘 익는 나파밸리 와인은 영한 빈티지도 바로 오픈해 마시기 좋지만 보르도 그랑크뤼 1등급은
10년은 고사하고 20년은 숙성돼야 겨우 잠재력을 폭발시킵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나파밸리 와인이
이길 수밖에 없었던 매우 불공정한 대회라는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 해답을 찾아 나파밸리의 심장 오크빌의 투 칼론 빈야드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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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판 화이트 1위 샤토 몬텔레나 1973. 최현태 기자 |
◆파리의 심판은 불공정한 대회?
오전에 진행된 화이트 와인 심사에선 샤토 몬텔레나 샤도네이(Chateau Montelena) 1973이
132점을 얻어 부르고뉴 뫼르소 샤름 프리미에 크뤼 훌로(Meursault Charmes 1er Cru Roulot·126.5점)를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합니다. 뿐만 아니라 3위 샬로네 빈야드(Chalone Vineyard) 1974, 4위 스프링 마운틴 빈야드
(Spring Mountain Vineyard) 1973 등 5위안에 나파밸리 와인이 3개나 포진합니다.
큰 충격을 받은 프랑스 심사위원들은 오후에 열린 레드 와인 심사에선 아무런 말없이 심사에만 집중합니다.
보르도 와인을 반드시 찾아내 높은 점수를 주겠다는 일념으로. 하지만 스택스립 SLV 카베르네 소비뇽
(Stag's Leap SLV Cabernet Sauvignon) 1973이 127.5점을 얻어 샤토 무통 로칠드 1970을 1.5점차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고 1위에 오릅니다. 더구나 3위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 Brion), 4위
샤토 몽로즈(Chateau Montrose) 등 유명 와인들을 모두 제쳤기에 심사위원들은 자괴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심사위원은 9명으로 모두 프랑스의 와인 전문가들입니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Domaine de la Romanee-Conti) 공동 소유자 오베르 드 빌라인(Aubert de Villaine)
▲샤토 지스꾸르(Chateau Giscours) 오너이자 그랑크뤼클라세협회(Union des Grand Cru Classe) 회장 피에르 타리(Pierre Tari)
▲에뷔 드 뱅 드 프랑스(Revue de Vins de France) 편집장 오데뜨 칸(Odette Kahn)
▲프랑스 국립원산지명칭연구소(INAO· Institut National des'd origine) 회장 피에르 브레조(Pierre Brejoux)
▲와인 인스티튜트 오브 프랑스(Wine Institute of France) 교수 미셸 도바즈(Michel Dovaz)
▲고 미요 레스토랑 가이드(Gault Millau Restaurant Guide) 세일즈 디렉터 클라우드 두보 미요(Claude Dubois-Millot)
▲미슐랭 3스타 레드토랑 르 그랑 베푸(Le Grand Vefour) 오너 셰프 레이몽 올리비에(Raymond Oliver)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라 뚜흐 다흐장(La Tour d’Argent) 헤드 소믈리에 크리스티앙 바네크(Christian Vaneque)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르 따유벙(Le Taillevent) 오너 장 클라우드 브리나(Jean-Claude Vrinat)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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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판 현장 왼쪽부터 패트리샤 갤러거, 스티븐 스퍼리어, 오데뜨 칸. |
이들 중 일부는 심사 결과를 받아들지 못합니다. 피에르 타리 그랑크뤼클라세협회 회장은 “프랑스 와인은 기후 때문에
캘리포니아 와인 보다 서서히 풍미가 발전된다. 이 테스트는 옳지 않다”고 심사 결과를 반박합니다.
또 오데뜨 칸 에뷔 드 뱅 드 프랑스 편집장은 “캘리포니아 와인이 너무 프랑스 와인을 따라 하기 때문에 이것은
잘못된 테스트다”, 미셸 도바즈 와인 인스티튜트 오브 프랑스 교수는 “5~10년이 지나 와인들이 더 숙성되었을 때라면
프랑스 레드 와인들이 훨씬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심사 결과를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파리의 심판 30주년 대회 결과는?
그렇다면 도바즈 교수 말대로 보르도 와인이 숙성되면 경쟁에서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2년뒤 똑같은 와인 20종으로 1978년 샌 프란시스코 와인 테이스팅(San Francisco Wine Tasting)이 열렸는데
결과는 더욱 처참합니다. 화이트와 레드 모두 나파밸리 와인이 1∼3위를 휩씁니다. 끝이 아닙니다.
파리의 심판 10주년을 맞아 1986년 프랑스요리학교(French Culinary Institute)에서 시음 적기가 지난 화이트 와인을 제외하고
레드 와인만 1976년 대회와 같은 빈티지로 9종을 심사합니다. 역시 끌로 뒤 발(Clos Du Val)과 릿지 빈야드 몬테벨로
(Ridge Vineyards Monte Bello)등 나파밸리 와인이 1, 2위를 차지합니다. 같은 해 유명 와인매체인 와인 스펙테이터
(Wine Spectator)도 같은 와인으로 10종을 심사했는데 하이츠 와인셀러 마르타 빈야드(Heitz Wine Cellars Martha's Vineyard)가
1위에 올랐고 1∼5위를 나파밸리 와인이 휩씁니다. 샤토 오브리옹은 두 대회에서 모두 꼴찌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합니다.
보르도 그랑크뤼 1등급은 20∼30년은 돼야 잠재력이 폭발하니 30년이 지나면 좀 달라졌을까요.
그래서 2006년 파리의 심판 30주년 기념 대회가 유럽과 미국에서 동시에 열립니다. 각각 10명씩 20명 심사위원이 참여해
같은 빈티지 10종을 심사한 결과 릿지 빈야드 몬데 벨로 1위, 스택스립와인셀라 2위 등 1∼5위를 모두 나파밸리 와인이 차지합니다.
파리의 심판에서 자신감을 얻은 미국 와인들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할란 에스테이트(Harlan Estate),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 콜긴 셀라스(Colgin Cellars) 등으로 대표되는 ‘컬트 와인’의 등장입니다.
장인 정신으로 아주 소량생산하기에 전세계 수입사들이 메일링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몇년을 기다려야
겨우 물량을 공급받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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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파밸리 포도밭 전경. 캡스톤 캘리포니아 홈페이지 |
◆하늘이 내린 지형과 기후
나파밸리 와인이 보르도 1등급 와인과의 대결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뛰어난 지형과 기후덕분입니다.
나파밸리는 이곳에 거주했던 인디언 와포(Wappo) 부족 말로 ‘풍요로운 땅’이란 뜻을 지녔을 정도랍니다. 스택스립 디스트릭트
북쪽 끝에는 이 땅의 원래 주인을 기리는 와포 힐 빈야드(Wappo Hill Vinyard)도 있답니다.
나파밸리는 서쪽 마야카마스 산맥과 동쪽 바카 산맥 사이에 끼어있는 좁은 계곡입니다. 마야카마스 산맥은 ‘비그늘’ 효과를 제공합니다.
태평양에서 오는 비구름을 막아줘 포도재배에 좋은 뛰어난 일조량과 건조한 기후를 선사합니다. 여기에 나파밸리 남쪽 샌프란시스코 만을 통해
서늘한 바다의 기운도 계곡을 따라 잘 들어옵니다. 또 나파밸리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나파강까지 더해집니다.
덕분에 따뜻한 낮에는 포도의 당도가 쭉쭉 올라가지만 밤에는 바다와 강의 안개가 온도를 떨어뜨려 서늘한 기후를 선사,
포도가 충분히 휴식하면서 산도를 잘 움켜쥐는 최고의 와인산지가 됐습니다. 현재 나파밸리 와인 생산량은 캘리포니아
전체 생산량의 4%에 불과하지만 매출은 25%를 차지합니다. 그만큼 프리미엄 와인이 많다는 얘기죠.
◆나파밸리 최고의 포도밭 오크빌 투 칼론
나파밸리 AVA는 모두 16개로 포도밭은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계곡 바닥인 밸리 플로어(Valley Floor)와 산악지대입니다.
밸리 플로어는 북쪽에서부터 칼리스토가(Calistoga), 세인트헬레나(St. Helena), 루더포드(Rutherford), 오크빌(Oakville),
욘트빌(Yountville), 스택스립 디스트릭트(Stage Leap District), 오크놀 디스트릭트(Oak Knoll District), 그리고
나파 시내를 지나 샌프란시스코 만과 인접한 로스 카르네로스(Los Carneros)까지 이어지며 비옥한 석회암과 점토 토양입니다.
보통 탄닌이 부드럽고 과일향이 많이 납니다. 서쪽 마야카마스 산악지대 포도밭은 북쪽에서부터 다이아몬드 마운틴
(Diamond Mountain), 스프링 마운틴(Spring Mountain), 마운트 비더(Mount Veeder)가 포진됐습니다.
동쪽 바카 산맥쪽에는 북쪽에서부터 하웰 마운틴(Howell Mountain), 칠리스 밸리(Chiles Valley), 아틀라스 피크(Atlas Peak)가
이어집니다. 산악지대는 화산암, 석회암, 자갈토 등 암석이 많은 척박한 토양으로 구조감이 뛰어난 포도가 생산됩니다.
나파밸리에선 오크빌이 최고의 와인산지로 꼽히며 오크빌의 심장으로 불리는 포도밭이 투 칼론(To Kalon) 빈야드입니다.
그리스어로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미국 포도재배와 와인양조의 아이콘 해밀턴 크랩이 1868년부터 최초로
카베르네 소비뇽 등을 재배한 굉장히 유서깊은 곳입니다. 투 칼론은 마야카마스 산맥과 계곡 평지가 만나는 곳에 형성된
포도밭이라 산에서 내려온 퇴적물과 나파강이 만든 해양퇴적물이 모두 섞인 충적토랍니다. 배수가 잘 되면서도
토양 두께가 굉장히 두터워 무기질이 풍부합니다. 일반적으로 북반구는 북쪽이 서늘하고 남쪽이 따뜻하지만
나파밸리는 반대로 북쪽으로 갈수록 덥고 남쪽으로 갈수록 시원합니다. 오크빌과 투 칼론은 나파밸리 정중앙이라
더운 지역과 서늘한 지역의 장점을 모두 지녀 나파밸리의 최고의 포도밭이 됐습니다.
◆투 칼론에서 탄생한 컬트와인 슈레이더
금주령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미국 포도밭이 황폐화됩니다. 투 칼론도 마찬가지였는데 ‘미국 와인의 아버지’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가 1966~1978년 투 칼론 빈야드 대부분을 매입하면서, 미국 와인의 역사를 새로 쓰는데
투 칼론이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몬다비 와이너리를 컨스텔레이션 브랜즈(Constellation Brands)가 사들이면서
현재 투 칼론의 440에이커(약 178ha)를 컨스텔레이션 브랜즈가 소유하게 됩니다.
투 칼론에서 최고의 컬트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2017년 컨스텔레이션 브랜즈 일원이 된 슈레이더 셀라스(Schrader Cellars)입니다.
골동품 딜러였던 프레드 슈레이더(Fred Schrader)는 그의 친구 브라이언 콜레(Brian Cole) 초대로 1988년
나파밸리 와인 경매에 참여하면서 와인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는 1998년 와이너리를 설립하고 최고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여러 배럴을 시음하다 굉장히 탁월한 배럴을 찾아 냅니다. 이 배럴의 출처가 바로 나파밸리의
유명한 농부 앤디 백스토퍼(Andy Beckstoffer)의 투 칼론 포도밭입니다. 투 칼론에서도 그가 소유한 포도밭을
‘백스토퍼 투 칼론’으로 따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백스토퍼는 현재 80에이커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포도를 얻기
굉장히 어려웠던 시절이라 슈레이더는 여러차례 간청한 끝에 아주 소량을 겨우 얻어 와인을 빚기 시작했는데
너무 맛있는 와인을 만들어내자 백스토퍼는 점점 포도 공급량을 늘려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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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리버스 브라운과 프레드 슈레이더. 홈페이지 |
슈레이더는 나파밸리 최고의 와인메이커중 한명인 토머스 리버스 브라운(Thomas Rivers Brown)을 2000년 영입하면서 날개를 답니다.
토머스는 당시 나파밸리 북부 칼리스토가의 와이너리에서 진판델을 주로 만들었을 뿐 카베르네 소비뇽을 만들어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군요. 그럼에도 슈레이더는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간판, 함께 손을 잡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와인생산에 들어갑니다.
포도 품종에 가장 적합한 블록을 찾아내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토머스는 지금까지 슈레이더 와인메이킹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특히 토머스는 포도 수확시기와 포도즙 착즙 시점을 매우 정확하게 뽑아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양조과정에서 즙을 우려내는
침용을 너무 길게 하면 떨떠름한 맛이 강해지고 너무 일찍 짜내면 색과 풍미가 적합하지 않은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나파밸리의 많은 와인메이커들이 유명 양조대학 출신인 것과 달리, 토머스는 독학으로 양조를 터득했다니 천재적인 능력입니다.
◆숙성잠재력도 뛰어난 나파밸리 와인
한국을 찾은 슈레이더 제너럴 매니저이자 마스터 소믈리에 제이슨 스미스(Jason Smith)와 함께 슈레이더의 매력을 따라갑니다.
슈레이더는 나라셀라에서 수입합니다. 슈레이더 RBS 2021과 2012를 비교 시음해보니 파리의 심판 30주년 대회에서도
예상과 달리 나파밸리 와인이 완승한 이유가 쉽게 이해됩니다. 영할때도 마시기 편하지만 숙성하면 잠재력이 폭발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슈레이더 RBS는 투 칼론에서도 백스토퍼 포도로만 만듭니다. 라즈베리, 블루베리 과일향으로 시작해
구운 자두향이 더해지고 시작해 시간이 지나면 감초의 허브향, 담뱃잎, 흙내음이 피어오르며 부드러운 탄닌이 느껴집니다.
미디움 풀바디 와인으로 밀도가 아주 촘촘하고 구조감이 뛰어나며 질감은 매끄럽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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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레이더 RBS 2012와 2021. 최현태 기자 |
2021 빈티지는 2년 밖에 안됐으니 아주 영한 와인에서 속합니다. 하지만 나파밸리 와인답게 가죽, 버섯 등 3차향인 숙성향도
어느 정도 느껴질 정도로 마시기 좋습니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2012 빈티지는 어떨까요. 2021 빈티지에서 느낀 향들이
극대화된 모습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 보르도 우안 생테밀리옹이나 부르고뉴 빌라쥐 피노누아에서 느껴지는 우아한 향이 더해집니다.
영화배우로 따지면 2021 빈티지는 엣지있게 정장을 차려입은 이정재를 닮았고 2012 빈티지는 중후하게 나이 든 조지 클루니 같은
느낌이네요. 개인적으로는 10년 숙성한 2012를 더 선호합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라고 말하네요.
신선한 과일향과 산도를 좋아한다면 2021을 선호하고 숙성된향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2012를 더 좋아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슈레이더 RBS는 백스토퍼 투 칼론에 심어진 카베르네 소비뇽 ‘클론 337’을 사용합니다. “슈레이더 RBS는 슈레이더 메인 와인중
가장 라이트한 와인에 속해요. 클론 337은 완숙미를 잘 이끌어내는 클론이라 점점 인기가 높아져 요즘 나파밸리에서
점점 식재가 늘고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클론이라도 한 나무에 너무 포도송이가 많이 열리게 하면 집중도가 떨어져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중급 와인이 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슈레이더 RBS는 단위 면적당 소출량을 줄여 집중도를 높입니다.
완숙미를 잘 끌어내지만 그만큼 관리도 잘 해야 하는 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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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다아이몬드 2019 와인스펙테이터 1위. 인스타그램 |
◆와인스펙테이터 1위 오른 ‘세컨드 와인’의 반란
더블 다이아몬드 카베르네 소비뇽(Double Diamond Cabernet Sauvignon)은 슈레이더의 세컨드 와인입니다.
슈레이더 와인들이 워낙 고가이다보니 소비자들이 보다 접근하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와인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선정에서 더블 다이아몬드 2019가 올해의 와인, 즉 1위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해 큰 화제가 됐습니다. 2021 빈티지는
블랙베리, 블랙 커런트 과일향으로 시작해 스피어민트, 육두구의 허브향이 어우러지고 제비꽃과 라벤더향에 이어 잔을 흔들면
우롱차, 부싯돌, 초콜릿, 가죽향이 피어오릅니다. “더블 다이아몬드는 영할때도 접근성이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주로 투 칼론의 포도를 쓰며 오크빌 포도가 일부 들어갑니다. 슈레이더 메인 와인은 100% 뉴오크로 만들지만 더블 다이아몬드는
새 오크와 2년차 프렌치 오크를 절반씩 사용합니다.” 2021 빈티지부터는 레이블에 시그니처 와인 올드 스파키의 상징인
드레곤 그림을 넣어 올드 스파키의 정체성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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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다이아몬드 프로프라이터리 레드 2021. 최현태 기자 |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프라이터리 레드(Double Diamond Proprietary Red) 2021은 100%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빚는
슈레이더 와인들과 달리 카베르네 소비뇽 51%, 메를로 25%, 카버네 프랑 24%를 섞은 보르도 블렌딩 와인입니다.
잘 익은 레드체리, 블루베리 과일향과 석류, 월계수잎, 피망의 신선한 그린노트가 어우러지고 시간이 지나면
에스프레소 커피향과 다크 초콜릿도 피어납니다. 실크처럼 매끄러운 탄닌도 긴 여운이 돋보입니다. 뉴오크는 50%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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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 사이즈 올드 스파키와 RBS. 최현태 기자 |
◆투 칼론의 화룡정점 ‘올드 스파키’
슈레이더 와인 이름은 대부분 포도가 조달된 블록 또는 클론 이름인데 올드 스파키와 콜드워디만 다릅니다.
모든 배럴중에서 가장 좋은 배럴만 골라내 만든 배럴 셀렉션 와인입니다. 올드 스파키는 백스토퍼, 콜드워디는
백스토퍼 라스 피에드라스(Las Piedras) 포도로 만듭니다. 슈레이더의 별명인 불을 뿜는 드래곤이 와인 레이블 정중앙에
커다랗게 자리잡은 올드 스파키는 레이블만큼 강렬합니다. 일반 와인 두배인 1.5ℓ 매그넘병으로만 만듭니다. 코에 갖다대는 순간
블랙체리, 블랙베리 등 검은 과일향이 압도하고 라일락 꽃향기에 이어 민트의 허브향, 말린자두, 건포도, 카시스,
타바코가 따라 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와 다크초콜릿의 농밀한 풍미와 씨간장, 젖은 나뭇잎 같은
숙성향이 비강을 가득 채웁니다. 촘촘하게 잘 짜인 탄닌은 부드럽게 목젖을 타고 흐르고 양파 껍질을 벗기듯,
다양한 향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뛰어난 복합미를 지녔습니다. 매그넘은 장기숙성이 이상적인 사이즈로 7∼8년 정도
숙성했을때 가장 마시기 좋다는 군요. 10∼15년에 피크에 진입한 뒤 오랫동안 유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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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레이더 헤리티지 클론 2021. 최현태 기자 |
슈레이더 헤리티지 클론 카버네 소비(Schrader Heritage Clone Cabernet Sauvignon) 2021은 투 칼론의 한 블록에서
자라는 클론 31로 만듭니다. 스미스씨가 보여주는 포도송이 사진을 보니 일반 포도송이 절반 정도 크기입니다.
“미국 유명 양조대학인 UC 데이비스는 1930년대부 이 클론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별도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랍니다. 일정 블록 전체를 헤리티지 클론으로 조성하기도 해요. 포도송이가 아주 작아 집중력 좋아요.
투 칼론 포도밭을 걷다보면 헤리티지 구획만 송이가 확 작아집니다” 레드체리 등 잘 익은 과일향이 비강을 가득 채우고
귤 껍질, 초콜릿, 흙내음의 어우러지며 생기 넘치는 산도가 음식을 부릅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호주, 체코, 스위스,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출처 : 최현태기자의 와인홀릭]
보르도 그랑크뤼 10년 이상 숙성해야 ‘제맛’/나파밸리 와인 영한 빈티지도 바로 마시기 좋아/
같은 빈티지로 30년뒤 재대결서도 나파밸리 ‘완승’/나파밸리 심장 오크빌 투 칼론에서 빚는
‘컬트 와인’ 슈레이더/‘영빈’도 마시기 좋지만 ‘올빈’은 맛과 향 극대화
1976년 5월 24일 프랑스 파리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파리의 심판’. 프랑스 ‘5대 샤토’인 그랑크뤼 클라세 1등급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오브리옹 등 프랑스 와인과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인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맞붙은
와인업계의 유명한 사건이죠. 당시만 해도 나파밸리는 그저 그런 싸구려 테이블 와인이나 만드는 와인의 변방으로
여겨지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나파밸리 와인은 화이트와 레드에서 모두 1위를 휩씁니다. 고급와인의 기준은 프랑스였기에
대회 결과는 프랑스 와인업계는 물론, 전세계 와인업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대회를 마치고 일부 심사위원을 중심으로 프랑스 와인에 아주 불리한 대회였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당시 프랑스와 나파밸리 와인은 거의 비슷한 빈티지로 맞붙었습니다. 레드 와인의 경우 보르도는 1970∼1971 빈티지,
나파밸리는 1969∼1973 빈티지입니다. 화이트 와인도 1972∼1973 빈티지로 비슷합니다. 뛰어난 기후 덕분에
포도가 잘 익는 나파밸리 와인은 영한 빈티지도 바로 오픈해 마시기 좋지만 보르도 그랑크뤼 1등급은
10년은 고사하고 20년은 숙성돼야 겨우 잠재력을 폭발시킵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나파밸리 와인이
이길 수밖에 없었던 매우 불공정한 대회라는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 해답을 찾아 나파밸리의 심장 오크빌의 투 칼론 빈야드로 떠납니다.
◆파리의 심판은 불공정한 대회?
오전에 진행된 화이트 와인 심사에선 샤토 몬텔레나 샤도네이(Chateau Montelena) 1973이
132점을 얻어 부르고뉴 뫼르소 샤름 프리미에 크뤼 훌로(Meursault Charmes 1er Cru Roulot·126.5점)를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합니다. 뿐만 아니라 3위 샬로네 빈야드(Chalone Vineyard) 1974, 4위 스프링 마운틴 빈야드
(Spring Mountain Vineyard) 1973 등 5위안에 나파밸리 와인이 3개나 포진합니다.
큰 충격을 받은 프랑스 심사위원들은 오후에 열린 레드 와인 심사에선 아무런 말없이 심사에만 집중합니다.
보르도 와인을 반드시 찾아내 높은 점수를 주겠다는 일념으로. 하지만 스택스립 SLV 카베르네 소비뇽
(Stag's Leap SLV Cabernet Sauvignon) 1973이 127.5점을 얻어 샤토 무통 로칠드 1970을 1.5점차
근소한 차이로 따돌리고 1위에 오릅니다. 더구나 3위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 Brion), 4위
샤토 몽로즈(Chateau Montrose) 등 유명 와인들을 모두 제쳤기에 심사위원들은 자괴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심사위원은 9명으로 모두 프랑스의 와인 전문가들입니다.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Domaine de la Romanee-Conti) 공동 소유자 오베르 드 빌라인(Aubert de Villaine)
▲샤토 지스꾸르(Chateau Giscours) 오너이자 그랑크뤼클라세협회(Union des Grand Cru Classe) 회장 피에르 타리(Pierre Tari)
▲에뷔 드 뱅 드 프랑스(Revue de Vins de France) 편집장 오데뜨 칸(Odette Kahn)
▲프랑스 국립원산지명칭연구소(INAO· Institut National des'd origine) 회장 피에르 브레조(Pierre Brejoux)
▲와인 인스티튜트 오브 프랑스(Wine Institute of France) 교수 미셸 도바즈(Michel Dovaz)
▲고 미요 레스토랑 가이드(Gault Millau Restaurant Guide) 세일즈 디렉터 클라우드 두보 미요(Claude Dubois-Millot)
▲미슐랭 3스타 레드토랑 르 그랑 베푸(Le Grand Vefour) 오너 셰프 레이몽 올리비에(Raymond Oliver)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라 뚜흐 다흐장(La Tour d’Argent) 헤드 소믈리에 크리스티앙 바네크(Christian Vaneque)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르 따유벙(Le Taillevent) 오너 장 클라우드 브리나(Jean-Claude Vrinat) 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심사 결과를 받아들지 못합니다. 피에르 타리 그랑크뤼클라세협회 회장은 “프랑스 와인은 기후 때문에
캘리포니아 와인 보다 서서히 풍미가 발전된다. 이 테스트는 옳지 않다”고 심사 결과를 반박합니다.
또 오데뜨 칸 에뷔 드 뱅 드 프랑스 편집장은 “캘리포니아 와인이 너무 프랑스 와인을 따라 하기 때문에 이것은
잘못된 테스트다”, 미셸 도바즈 와인 인스티튜트 오브 프랑스 교수는 “5~10년이 지나 와인들이 더 숙성되었을 때라면
프랑스 레드 와인들이 훨씬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심사 결과를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파리의 심판 30주년 대회 결과는?
그렇다면 도바즈 교수 말대로 보르도 와인이 숙성되면 경쟁에서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2년뒤 똑같은 와인 20종으로 1978년 샌 프란시스코 와인 테이스팅(San Francisco Wine Tasting)이 열렸는데
결과는 더욱 처참합니다. 화이트와 레드 모두 나파밸리 와인이 1∼3위를 휩씁니다. 끝이 아닙니다.
파리의 심판 10주년을 맞아 1986년 프랑스요리학교(French Culinary Institute)에서 시음 적기가 지난 화이트 와인을 제외하고
레드 와인만 1976년 대회와 같은 빈티지로 9종을 심사합니다. 역시 끌로 뒤 발(Clos Du Val)과 릿지 빈야드 몬테벨로
(Ridge Vineyards Monte Bello)등 나파밸리 와인이 1, 2위를 차지합니다. 같은 해 유명 와인매체인 와인 스펙테이터
(Wine Spectator)도 같은 와인으로 10종을 심사했는데 하이츠 와인셀러 마르타 빈야드(Heitz Wine Cellars Martha's Vineyard)가
1위에 올랐고 1∼5위를 나파밸리 와인이 휩씁니다. 샤토 오브리옹은 두 대회에서 모두 꼴찌를 기록하는 수모를 당합니다.
보르도 그랑크뤼 1등급은 20∼30년은 돼야 잠재력이 폭발하니 30년이 지나면 좀 달라졌을까요.
그래서 2006년 파리의 심판 30주년 기념 대회가 유럽과 미국에서 동시에 열립니다. 각각 10명씩 20명 심사위원이 참여해
같은 빈티지 10종을 심사한 결과 릿지 빈야드 몬데 벨로 1위, 스택스립와인셀라 2위 등 1∼5위를 모두 나파밸리 와인이 차지합니다.
파리의 심판에서 자신감을 얻은 미국 와인들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할란 에스테이트(Harlan Estate),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 콜긴 셀라스(Colgin Cellars) 등으로 대표되는 ‘컬트 와인’의 등장입니다.
장인 정신으로 아주 소량생산하기에 전세계 수입사들이 메일링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몇년을 기다려야
겨우 물량을 공급받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립니다.
◆하늘이 내린 지형과 기후
나파밸리 와인이 보르도 1등급 와인과의 대결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뛰어난 지형과 기후덕분입니다.
나파밸리는 이곳에 거주했던 인디언 와포(Wappo) 부족 말로 ‘풍요로운 땅’이란 뜻을 지녔을 정도랍니다. 스택스립 디스트릭트
북쪽 끝에는 이 땅의 원래 주인을 기리는 와포 힐 빈야드(Wappo Hill Vinyard)도 있답니다.
나파밸리는 서쪽 마야카마스 산맥과 동쪽 바카 산맥 사이에 끼어있는 좁은 계곡입니다. 마야카마스 산맥은 ‘비그늘’ 효과를 제공합니다.
태평양에서 오는 비구름을 막아줘 포도재배에 좋은 뛰어난 일조량과 건조한 기후를 선사합니다. 여기에 나파밸리 남쪽 샌프란시스코 만을 통해
서늘한 바다의 기운도 계곡을 따라 잘 들어옵니다. 또 나파밸리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나파강까지 더해집니다.
덕분에 따뜻한 낮에는 포도의 당도가 쭉쭉 올라가지만 밤에는 바다와 강의 안개가 온도를 떨어뜨려 서늘한 기후를 선사,
포도가 충분히 휴식하면서 산도를 잘 움켜쥐는 최고의 와인산지가 됐습니다. 현재 나파밸리 와인 생산량은 캘리포니아
전체 생산량의 4%에 불과하지만 매출은 25%를 차지합니다. 그만큼 프리미엄 와인이 많다는 얘기죠.
◆나파밸리 최고의 포도밭 오크빌 투 칼론
나파밸리 AVA는 모두 16개로 포도밭은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됩니다. 계곡 바닥인 밸리 플로어(Valley Floor)와 산악지대입니다.
밸리 플로어는 북쪽에서부터 칼리스토가(Calistoga), 세인트헬레나(St. Helena), 루더포드(Rutherford), 오크빌(Oakville),
욘트빌(Yountville), 스택스립 디스트릭트(Stage Leap District), 오크놀 디스트릭트(Oak Knoll District), 그리고
나파 시내를 지나 샌프란시스코 만과 인접한 로스 카르네로스(Los Carneros)까지 이어지며 비옥한 석회암과 점토 토양입니다.
보통 탄닌이 부드럽고 과일향이 많이 납니다. 서쪽 마야카마스 산악지대 포도밭은 북쪽에서부터 다이아몬드 마운틴
(Diamond Mountain), 스프링 마운틴(Spring Mountain), 마운트 비더(Mount Veeder)가 포진됐습니다.
동쪽 바카 산맥쪽에는 북쪽에서부터 하웰 마운틴(Howell Mountain), 칠리스 밸리(Chiles Valley), 아틀라스 피크(Atlas Peak)가
이어집니다. 산악지대는 화산암, 석회암, 자갈토 등 암석이 많은 척박한 토양으로 구조감이 뛰어난 포도가 생산됩니다.
나파밸리에선 오크빌이 최고의 와인산지로 꼽히며 오크빌의 심장으로 불리는 포도밭이 투 칼론(To Kalon) 빈야드입니다.
그리스어로 ‘최고의 아름다움’이라는 뜻으로 미국 포도재배와 와인양조의 아이콘 해밀턴 크랩이 1868년부터 최초로
카베르네 소비뇽 등을 재배한 굉장히 유서깊은 곳입니다. 투 칼론은 마야카마스 산맥과 계곡 평지가 만나는 곳에 형성된
포도밭이라 산에서 내려온 퇴적물과 나파강이 만든 해양퇴적물이 모두 섞인 충적토랍니다. 배수가 잘 되면서도
토양 두께가 굉장히 두터워 무기질이 풍부합니다. 일반적으로 북반구는 북쪽이 서늘하고 남쪽이 따뜻하지만
나파밸리는 반대로 북쪽으로 갈수록 덥고 남쪽으로 갈수록 시원합니다. 오크빌과 투 칼론은 나파밸리 정중앙이라
더운 지역과 서늘한 지역의 장점을 모두 지녀 나파밸리의 최고의 포도밭이 됐습니다.
◆투 칼론에서 탄생한 컬트와인 슈레이더
금주령 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미국 포도밭이 황폐화됩니다. 투 칼론도 마찬가지였는데 ‘미국 와인의 아버지’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가 1966~1978년 투 칼론 빈야드 대부분을 매입하면서, 미국 와인의 역사를 새로 쓰는데
투 칼론이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몬다비 와이너리를 컨스텔레이션 브랜즈(Constellation Brands)가 사들이면서
현재 투 칼론의 440에이커(약 178ha)를 컨스텔레이션 브랜즈가 소유하게 됩니다.
투 칼론에서 최고의 컬트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2017년 컨스텔레이션 브랜즈 일원이 된 슈레이더 셀라스(Schrader Cellars)입니다.
골동품 딜러였던 프레드 슈레이더(Fred Schrader)는 그의 친구 브라이언 콜레(Brian Cole) 초대로 1988년
나파밸리 와인 경매에 참여하면서 와인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는 1998년 와이너리를 설립하고 최고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여러 배럴을 시음하다 굉장히 탁월한 배럴을 찾아 냅니다. 이 배럴의 출처가 바로 나파밸리의
유명한 농부 앤디 백스토퍼(Andy Beckstoffer)의 투 칼론 포도밭입니다. 투 칼론에서도 그가 소유한 포도밭을
‘백스토퍼 투 칼론’으로 따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백스토퍼는 현재 80에이커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당시 포도를 얻기
굉장히 어려웠던 시절이라 슈레이더는 여러차례 간청한 끝에 아주 소량을 겨우 얻어 와인을 빚기 시작했는데
너무 맛있는 와인을 만들어내자 백스토퍼는 점점 포도 공급량을 늘려줬다고 합니다.
슈레이더는 나파밸리 최고의 와인메이커중 한명인 토머스 리버스 브라운(Thomas Rivers Brown)을 2000년 영입하면서 날개를 답니다.
토머스는 당시 나파밸리 북부 칼리스토가의 와이너리에서 진판델을 주로 만들었을 뿐 카베르네 소비뇽을 만들어 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군요. 그럼에도 슈레이더는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간판, 함께 손을 잡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와인생산에 들어갑니다.
포도 품종에 가장 적합한 블록을 찾아내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토머스는 지금까지 슈레이더 와인메이킹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특히 토머스는 포도 수확시기와 포도즙 착즙 시점을 매우 정확하게 뽑아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양조과정에서 즙을 우려내는
침용을 너무 길게 하면 떨떠름한 맛이 강해지고 너무 일찍 짜내면 색과 풍미가 적합하지 않은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나파밸리의 많은 와인메이커들이 유명 양조대학 출신인 것과 달리, 토머스는 독학으로 양조를 터득했다니 천재적인 능력입니다.
◆숙성잠재력도 뛰어난 나파밸리 와인
한국을 찾은 슈레이더 제너럴 매니저이자 마스터 소믈리에 제이슨 스미스(Jason Smith)와 함께 슈레이더의 매력을 따라갑니다.
슈레이더는 나라셀라에서 수입합니다. 슈레이더 RBS 2021과 2012를 비교 시음해보니 파리의 심판 30주년 대회에서도
예상과 달리 나파밸리 와인이 완승한 이유가 쉽게 이해됩니다. 영할때도 마시기 편하지만 숙성하면 잠재력이 폭발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슈레이더 RBS는 투 칼론에서도 백스토퍼 포도로만 만듭니다. 라즈베리, 블루베리 과일향으로 시작해
구운 자두향이 더해지고 시작해 시간이 지나면 감초의 허브향, 담뱃잎, 흙내음이 피어오르며 부드러운 탄닌이 느껴집니다.
미디움 풀바디 와인으로 밀도가 아주 촘촘하고 구조감이 뛰어나며 질감은 매끄럽게 느껴집니다.
2021 빈티지는 2년 밖에 안됐으니 아주 영한 와인에서 속합니다. 하지만 나파밸리 와인답게 가죽, 버섯 등 3차향인 숙성향도
어느 정도 느껴질 정도로 마시기 좋습니다.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2012 빈티지는 어떨까요. 2021 빈티지에서 느낀 향들이
극대화된 모습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 보르도 우안 생테밀리옹이나 부르고뉴 빌라쥐 피노누아에서 느껴지는 우아한 향이 더해집니다.
영화배우로 따지면 2021 빈티지는 엣지있게 정장을 차려입은 이정재를 닮았고 2012 빈티지는 중후하게 나이 든 조지 클루니 같은
느낌이네요. 개인적으로는 10년 숙성한 2012를 더 선호합니다. 하지만 스미스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취향”이라고 말하네요.
신선한 과일향과 산도를 좋아한다면 2021을 선호하고 숙성된향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2012를 더 좋아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슈레이더 RBS는 백스토퍼 투 칼론에 심어진 카베르네 소비뇽 ‘클론 337’을 사용합니다. “슈레이더 RBS는 슈레이더 메인 와인중
가장 라이트한 와인에 속해요. 클론 337은 완숙미를 잘 이끌어내는 클론이라 점점 인기가 높아져 요즘 나파밸리에서
점점 식재가 늘고 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클론이라도 한 나무에 너무 포도송이가 많이 열리게 하면 집중도가 떨어져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중급 와인이 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슈레이더 RBS는 단위 면적당 소출량을 줄여 집중도를 높입니다.
완숙미를 잘 끌어내지만 그만큼 관리도 잘 해야 하는 클론입니다.”
◆와인스펙테이터 1위 오른 ‘세컨드 와인’의 반란
더블 다이아몬드 카베르네 소비뇽(Double Diamond Cabernet Sauvignon)은 슈레이더의 세컨드 와인입니다.
슈레이더 와인들이 워낙 고가이다보니 소비자들이 보다 접근하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와인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선정에서 더블 다이아몬드 2019가 올해의 와인, 즉 1위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해 큰 화제가 됐습니다. 2021 빈티지는
블랙베리, 블랙 커런트 과일향으로 시작해 스피어민트, 육두구의 허브향이 어우러지고 제비꽃과 라벤더향에 이어 잔을 흔들면
우롱차, 부싯돌, 초콜릿, 가죽향이 피어오릅니다. “더블 다이아몬드는 영할때도 접근성이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주로 투 칼론의 포도를 쓰며 오크빌 포도가 일부 들어갑니다. 슈레이더 메인 와인은 100% 뉴오크로 만들지만 더블 다이아몬드는
새 오크와 2년차 프렌치 오크를 절반씩 사용합니다.” 2021 빈티지부터는 레이블에 시그니처 와인 올드 스파키의 상징인
드레곤 그림을 넣어 올드 스파키의 정체성을 담았습니다.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프라이터리 레드(Double Diamond Proprietary Red) 2021은 100%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빚는
슈레이더 와인들과 달리 카베르네 소비뇽 51%, 메를로 25%, 카버네 프랑 24%를 섞은 보르도 블렌딩 와인입니다.
잘 익은 레드체리, 블루베리 과일향과 석류, 월계수잎, 피망의 신선한 그린노트가 어우러지고 시간이 지나면
에스프레소 커피향과 다크 초콜릿도 피어납니다. 실크처럼 매끄러운 탄닌도 긴 여운이 돋보입니다. 뉴오크는 50% 사용합니다.
◆투 칼론의 화룡정점 ‘올드 스파키’
슈레이더 와인 이름은 대부분 포도가 조달된 블록 또는 클론 이름인데 올드 스파키와 콜드워디만 다릅니다.
모든 배럴중에서 가장 좋은 배럴만 골라내 만든 배럴 셀렉션 와인입니다. 올드 스파키는 백스토퍼, 콜드워디는
백스토퍼 라스 피에드라스(Las Piedras) 포도로 만듭니다. 슈레이더의 별명인 불을 뿜는 드래곤이 와인 레이블 정중앙에
커다랗게 자리잡은 올드 스파키는 레이블만큼 강렬합니다. 일반 와인 두배인 1.5ℓ 매그넘병으로만 만듭니다. 코에 갖다대는 순간
블랙체리, 블랙베리 등 검은 과일향이 압도하고 라일락 꽃향기에 이어 민트의 허브향, 말린자두, 건포도, 카시스,
타바코가 따라 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와 다크초콜릿의 농밀한 풍미와 씨간장, 젖은 나뭇잎 같은
숙성향이 비강을 가득 채웁니다. 촘촘하게 잘 짜인 탄닌은 부드럽게 목젖을 타고 흐르고 양파 껍질을 벗기듯,
다양한 향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뛰어난 복합미를 지녔습니다. 매그넘은 장기숙성이 이상적인 사이즈로 7∼8년 정도
숙성했을때 가장 마시기 좋다는 군요. 10∼15년에 피크에 진입한 뒤 오랫동안 유지됩니다.
슈레이더 헤리티지 클론 카버네 소비(Schrader Heritage Clone Cabernet Sauvignon) 2021은 투 칼론의 한 블록에서
자라는 클론 31로 만듭니다. 스미스씨가 보여주는 포도송이 사진을 보니 일반 포도송이 절반 정도 크기입니다.
“미국 유명 양조대학인 UC 데이비스는 1930년대부 이 클론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별도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랍니다. 일정 블록 전체를 헤리티지 클론으로 조성하기도 해요. 포도송이가 아주 작아 집중력 좋아요.
투 칼론 포도밭을 걷다보면 헤리티지 구획만 송이가 확 작아집니다” 레드체리 등 잘 익은 과일향이 비강을 가득 채우고
귤 껍질, 초콜릿, 흙내음의 어우러지며 생기 넘치는 산도가 음식을 부릅니다.
[출처 : 최현태기자의 와인홀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