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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 SAMJUNG

주류이야기[와인품종] 포도의 계보

2021-05-18


우리 인류가 그 어떤 곡물이나 채소보다도 오랫동안 재배하고 소비해온 것은 바로 포도입니다. 전 세계 약 8천만 헥타르에 해당하는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를 가공해 와인이나 주스, 혹은 다른 증류주로 만들거나 건포도 외 가공된 식품 등으로 소비하고 있지요. 포도를 이용해 오랫동안 와인을 만들고 마셔온 우리는 와인을 음미하고 공부하는 동안 각각의 포도, 그리고 산지가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스타일과 개성을 확인하고 포도의 품종을 나누고 학문적으로 구별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왔습니다.

하지만 와인을 만들고 마셔온 긴 역사에 비해 와인을 만드는 포도가 대부분 속해있는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 포도 품종의 기원과 그 관계에 대한 연구는 매우 늦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학자들은 1990년대 포도 품종의 1세대를 찾아 제안했고, 이후 그 아래 세대와 다양한 포도들이 만나고 파생된 여러 포도 품종에 대한 연구를 지구 곳곳에서 진행하며 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시라(Syrah)에 대해 배우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시라라는 품종은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로마군을 통해 페르시아에서 가져오게 되어 유사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죠. 이처럼 매우 흥미로운 신화 같은 포도 품종에 대한 유래를 담은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시라와 같이 운 좋게도 그 기원이 DNA 지문 분석을 통해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포도가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품종들도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비티스 비니페라 시작을 알린 대표적인 포도품종 3인방은 피노 누아(Pinot noir), 굴레 블랑(Goulais Blanc) 그리고 사바냥(Savagnin), 오늘날 와인을 만드는 포도의 1세대로 밝혀진 품종들을 소개합니다.






비티스 비니페라의 다양한 그룹을 이끄는 품종들
1. 피노(Pinot)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품종 중 하나인 피노 누아(Pinot Noir), 그리고 피노 그리(Pinot Gris), 피노 그리지오(Pinot Grisgio), 피노 블랑(Pinot Blanc) 등은 피노 누아에서 돌연변이로 파생된 품종입니다.

2. 굴레 블랑(Goulais Blanc)
이제는 프랑스에서 거의 잊힌 품종이라 할 수 있는 굴레 블랑은 이제 거의 버림 받듯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밭이 아닌 사부아 지역의 버려진 포도밭에서 종종 찾을 수 있는 품종입니다. 프랑스가 스위스와 국경을 마주하는 곳에서 생산되는 그바스(Gwäss)로 만든 와인을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시트러스 캐릭터가 매우 강한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3. 사바냥(Savagnin)
쥐라 와인의 인기를 업어 최근 매우 유명해진 품종으로 트라미너라고도 불리는데 게부르츠트라미너 포도의 트라미너가 여기서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알바리뇨 또한 사바냥입니다.

4.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카베르네 소비뇽에 비교해 비교적 라이트한 바디감으로 블렌딩에 자주 사용이 되며 보르도의 중요한 품종인 카베르네 프랑은 여러 품종에 영향을 준 1세대 포도품종이라 불리기에 아쉬움이 없습니다.

5. 몽되즈 누아(Mondeuse Noire)
시라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몽더즈 누아라는 사부아 지역의 포도 품종은 역시 오늘날 스위스와 사부아 지역 외에 해당 포도로만 만든 와인을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시라가 전 세계에 퍼질 수 있는 주요 1세대 품종입니다.

6. 가르가네가(Garganega)
소아베의 품종으로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가르가네가는 역시 베네토에서 많이 생산되는 코르비나(Corvina)와 론디넬라(Rondinella)라는 품종과 깊은 연관성을 보입니다. 멀리 여행을 해 시칠리아의 Grecanico Dorato라는 시칠리아의 포도품종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보르도 와인 품종의 관계]



보르도의 대표 품종, 얽히고 섞인 그들의 관계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은 카베르네 프랑과 소비뇽 블랑의 유전적 요소를 고르게 이어받은 품종이라 할 수 있으며 보르도에서 수 세기 전 자연적으로 교차해 만들어졌습니다. 메를로 또한 카베르네 프랑과 유전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메를로의 절반은 마그들렌 누아(Magdeleine Noire)라는 품종에서, 그 절반의 유전자는 카베르네 프랑에서 왔다고 합니다.

잠시 보르도를 떠나 칠레로 가봅니다. 필록세라가 창궐하기 전 보르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카르메네르(Carmenère)라는 품종은 오늘날 칠레에서 주로 생산됩니다. 미국에서 온 포도나무 가지에 적응을 쉽게 하지 못해 칠레에서 주로 생산, 수출되는 품종이 되었지만 실제 프랑스 보르도의 기후에서 더 쉽게 자랄 수 있는 이 품종의 대부분은 놀랍게도 1990년대까지 메를로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유전자 분석이나 과학적인 검증 없이 외형과 맛으로만 포도를 구분하던 시기에 우리가 범할 수 있었던 오류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포도의 생김새가 비슷하고 맛과 향에서 메를로와 포도 품종의 유전적 연구와 검증이 적극적으로 진행되어 17,000 에이커에 해당하는 칠레의 카르메네르 포도밭이 메를로가 아닌 본래의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다시 보르도로 돌아와 블렌딩에 자주 쓰이는 또 하나의 품종인 쁘띠 베르도(Petit Verdot)는 Goulais Blanc에서 온 포도로서 같은 지역에서 쓰이지만 여타 보르도의 포도 품종과 매우 먼 사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이트 포도 품종인 세미용은 아직 그 역사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시라(Syrah) 어떻게 추측되고 밝혀졌을까?
과학자들은 DNA 분석을 통해 시라가 프랑스 남동쪽에서 두레자(Dureza)와 몽되즈 블랑쉬(Mondeuses Blanche) 두 품종의 잡종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운 기후에서도 자랄 수 있는 특징을 장점으로 신세계에 당당히 자리 잡은 시라는 우리가 예상 했듯 프랑스가 그 고향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입니다.

또한 그 역사를 따라 올라가 보면 시라는 피노(Pinot) 품종의 후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피노 누아, 피노 블랑, 피노 그리 등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본 포도 품종이 속해있는 피노의 무리에 시라의 아버지인 두레자도 속합니다. 결국 시라는 론과 부르고뉴의 만남이라 할 수 있겠네요.

포도의 기원을 찾고 계보를 밝히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포도품종의 정보를 찾는 데는 여전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라의 역사와 함께하는 멋진 이야기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입증된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포도 이름과 지역에 관한 이야기들이 밝혀질 그 날을 기다려봅니다.


* 읽어보면 흥미로울 책과 웹사이트
- Wine Grapes – Jancis Robinson MW, Julia Harding MW, José Vouillamoz
- Jancisrobincon.com https://www.jancisrobinson.com/articles/the-founder-vine-varieties



[본문보기] 출처 : 마시자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