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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JU SAMJUNG

주류동향 및 뉴스주류 트렌드: 2023년, 우리가 하이볼과 위스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2023-04-04


소비 시장의 거대한 물줄기를 뒤바꾼 코로나19가 마침내 끝나고, 엔데믹으로 시작되는 첫 해를 맞았다. 지난 펜데믹 3년간의 라이프 스타일이 집단의 시대에서 개인의 시대로, 물량 중심에서 취향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주류 업계 또한 ‘혼술, 홈술’ 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했다. 변화는 이제 ‘뉴 노멀’이 되었다. 술은 더 이상 취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취하지 않을 권리가 주어진 시대에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성숙해진 주류 시장에서는 오롯이 콘텐츠로써 술에 접근하는 업장과 이에 따른 디테일을 챙기는 곳이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글 심현희


















하이볼 시장 지속 성장할 것으로 보여
올해 하이볼의 인기는 더욱 상승할 것이다. 현재 MZ세대 사이에서 제1의 술은 소주·맥주도 와인도 아닌 위스키 하이볼이다. 하이볼이란 위스키나 진 등 높은 도수의 술에 탄산 수를 섞은 칵테일을 뜻한다. 이 가운데 ‘위스키’를 원주로 한 하이볼이 특히 젊은 세대의 주류 문화를 이끌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위스키 수입 규모는 2020년 1억3246만 달러로 줄어들다가, 2021년 1억7534만 달러로 증가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도 2022년 위스키가 주류 카테고리 에서 처음으로 매출 1등 자리를 차지했다. 2020년만 해도 위스키는 주류 내 매출 순위 5위였으나 2021년 매출이 전년 대비 140% 늘고, 작년에도 지난달 중순까지 전년 동기 대비 67% 신장하며 결국 주류 카테고리 넘버원의 자리를 꿰찼다. ‘아재 술’로 불리던 위스키의 인기 일등 공신이 바로 ‘하이볼’이 되는 셈이다.
아시아 시장에서 하이볼의 인기는 앞서 1980년대 일본에서 시작됐다. 한국에 ‘치맥’이 있다면 일본엔 ‘하이볼+가라아게(닭튀김)’ 세트가 있을 정도인데 일본에선 이미 2000년대 부터 젊음, 열정, 자유로움 등의 이미지로 통했던 맥주의 자리를 하이볼이 대체해왔다. 자연히 위스키 판매량은 증가하고 맥주 소비량은 감소하게 됐는데 이러한 ‘하이볼 현상’이 한국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하이볼의 유래를 따지면 일본이 아니라 영국과 미국이다. 누가, 언제부터 만들어 마셨는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으나 스코틀랜드 골퍼들이 골프장에서 술을 마시다가 탄생했다는 설이 재미있다. 골프와 위스키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에서 사람들은 위스키를 마시면서 골프를 치곤 했다. 그런데 위스키는 도수가 40도에 이르기 때문에 금방 취해 18홀까지 게임을 이어 나가기가 힘들었다. 한 골퍼는 위스키에 탄산수를 타서 알코올 도수를 낮추면 훨씬 덜 취하고, 갈증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일행들에게 공유했고, 이 시원한 위스키는 금방 입소문이 나 골퍼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청량감이 뛰어난 이 탄산 위스키를 골퍼들은 게임 중 벌컥벌컥 들이켰고 결국 만취한 골퍼들은 전보다 많아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술 취한 골퍼들이 샷을 날리면 공이 엉뚱한 곳, 특히 함께 라운딩을 하는 사람 머리 위로 날아간다고 해서 이 술의 이름은 ‘하이볼’이 됐다. 하이볼은 이후 미국에도 알려졌고 미국인들은 스카치위스키 대신 버번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어 기차를 기다리면서 역에서 즐겨 마셨다고 한다.






 





일본의 주요 주류 문화로 잡리 잡은 하이볼
서양에서 시작된 하이볼이 일본에서 전성기를 맞은 건 일본 위스키 회사의 치밀한 마케팅 전략 덕분이다. 사케와 맥주를 주로 즐겼던 옛날 일본인들은 독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1929년부터 일본 최초로 싱글몰트위스키를 만들어 팔아온 산토리사(社)는 일본인들이 도수가 높은 술을 왜 꺼리는지 이유를 분석했다. 원인은 ‘DNA’라는 근원적 차원의 문제였다. 일본인 자체가 타고나기를 알콜 해독 능력이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1960년대 글로벌 주류시장에 보드카와 라이트럼이 등장 이후 전통적인 ‘독주’의 위상을 지켜온 스카치 위스키의 인기는 꾸준히 하락하고 있었다.
산토리는 위스키 판매량을 어떻게든 늘려보기 위해 1970년대 ‘하이볼 마케팅’을 고안했다. 탄산수와 얼음을 섞어 위스키의 도수를 누구나 마실 수 있도록 낮추는 것이 살길이라고 봤다. 주력 위스키 브랜드인 가쿠 위스키를 하이볼로 만들어 마시면 맛있다는 광고를 하면서 하이볼 전용잔 등 상품까지 만들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결과는 대성공. 진하고 독한 위스키 원주는 음식과의 페어링에 한계가 있지만 하이볼은 어느 음식에나 어울렸기 때문에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었다. 20년간 불황을 겪었던 일본의 위스키 시장은 1980년대 초반 화려하게 부활했으며 하이볼 인기를 타고 일본의 위스키 시장 또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산토리는 이후 프리미엄 위스키 브랜드 ‘히비키’ 등의 상품을 론칭하면서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위스키 브랜드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기 이른다.



하이볼과 포스트코로나 시대
반면 오늘날 한국의 ‘하이볼 현상’은 일본처럼 마케팅 전략의 성공적인 결과라기 보다는 2010년대 이후 찾아온 전반적인 사회, 경제적 변화에 따른 놀이·음주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사실 국내 위스키 시장은 김영란법 이후로 직격탄을 맞았다. 유흥 시장이 대폭 줄어들자 2010년대 중후반 임페리얼, 윈저 등 국산 위스키 매출 규모는 10년 전과 비교해 반토막이 났다. 수년 전 글로벌 최대 주류회사 가운데 하나인 페르노리카코리아가 임페리얼을 매각하고 최근 디아지오코리아도 윈저 브랜드를 따로 떼서 새로운 법인을 만들었다는 것은 국산 위스키, 즉 해외에서 원주를 들여와 국내 공장에서 병입해 판매하는 ‘룸싸롱 위스키’ 시장이 더 이상 캐시카우 역할을 할 수 없으니 철수 하겠다는 시그널이었다. 한마디로 글로벌 업체들이 김영란법으로 인해 위스키 시장은 돈이 안 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관짝에 묻혀버린 줄 알았던 국내 위스키 시장이 화려하게 부활한 건 코로나 19로 인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때문이다. 그런데 이전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블렌디드 위스키 원주에 물을 타서 도수를 맞춘 국산 위스키 시장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수입산 싱글몰트 위스키 시장이 ‘위스키 시즌2’의 첫 회를 열었다. 이는 지난 시즌1과 비교할 때 아예 다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술의 캐릭터와 소비 계층, 영향력 등 모든 구성 요소가 다르다.

먼저 술의 캐릭터다. 국내 위스키 시장은 기존 블렌디드 위스키(Blended Whisky) 중심에서 싱글몰트(Singlemalt) 위스키가 리드하는 시장으로 완전히 태세 전환했다. 블렌디드 위스키란 다양한 위스키 원액을 섞어서 만들었다는 의미로 밀, 옥수수, 감자 등 다양한 곡물을 원료로 한 그레인 위스키 (Grain Whisky)에 몰트 위스키(Malt Whisky) 원액을 배합해 맛을 낸 제품이다. 싱글몰트는 원료가 몰트(맥아) 하나다. 한 곳의 증류소에서 원료가 몰트 하나로만 만들어지는 위스키라 해서 싱글몰트라는 이름이 붙었다. 블렌 디드 위스키는 최적화된 맛의 조합이 목적이므로 원산지보다는 블렌딩한 업체 브랜드가 더 소비 시장에서 영향력을 갖는다. 반면 싱글몰트 위스키는 원주의 떼루아가 위스키의 맛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같은 스코틀랜드 땅에서 생산되는 위스키여도 지역마다 날씨, 땅, 증류 방법 등이 따르기 때문에 증류소마다 위스키 맛의 개성이 뚜렷하다. 예전처럼 집단으로 술을 마시는 행위를 기피하고 혼술, 홈술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찾아, 나의 주량에 맞게, 주류를 소비하는 요즘 MZ세대에게 딱 맞는 술이 바로 싱글몰트 위스키인 것이다.










 
 






싱글몰트 인기에 힘입은 싱글몰트 하이볼
이 위스키를 탄산수에 섞어 레몬 등을 첨가한 것이 하이볼이다. 국내에 하이볼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때는 2010년대 중반이다. 막 크래프트맥주가 인기를 얻고 와인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앞두고 꿈틀거리던 때였다. 초기에는 위스키 원주로 저렴한 산토리카쿠 위스키나 저렴한 아메리칸 위스키를 상징하는 짐빔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져갔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하이볼 또한 다양성과 취향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그 사이 다양한 싱글몰트 위스키를 경험해본 소비자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이제는 위스키를 다루는 업장에서 하이볼을 주문하면 “어떤 위스키로 드릴까요?”라고 먼저 질문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더 이상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속에나 나오는 대사가 아니라 일상이 됐다.
특히 외식업계에서 하이볼 열풍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아예 하이볼이라는 장르가 고착화돼 소주, 맥주 외에 필수로 갖춰야 할 술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다. 하이볼은 탄산이 들어가 음용성이 매우 뛰어나다. 고도수 위스키를 물로 희석한 것이라 바디감이 가볍다. 여기에 토닉워터나 레몬 등을 추가할 경우 기분 좋은 산미가 생긴다. 음용성과 산미는 술과 음식의 궁합을 따질 때 필요충분조건이다. 치킨에도 생선회에도 삼겹살에도 안 어울릴 수가 없다. 맥주보다 탄수화물 함량이 적어 건강을 생각하는 MZ세대라면 술자리에서 하이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이볼은 사용자 입장에서도 판매하기 좋은 술이다. 칵테일이라고는 하지만 레시피가 워낙 간편해 인건비를 들이지 않고 누구나 제조할 수 있다. 위스키 한 병으로 여러 잔을 만들어낼 수 있어 경제성도 뛰어나다. 하이볼이라는 개념은 이제 충분히 대중화됐으니 가성비가 좋은 고량주 하이볼, 전통주 하이볼 등으로 응용해서 판매해보는 것도 적절한 전략이다.













2023 술 마케팅 관전 포인트
“싱글몰트 맥주가 나왔다고?”


최근 하이트진로의 ‘테라’가 연말 마케팅으로 크리스마스 시즈널 맥주인 ‘테라 싱글몰트’를 출시한 것을 보고 ‘술 콘텐츠’의 시대가 왔음을 확신했다. 테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 브랜드다. 대량생산을 통해 모든 채널에 제품이 들어간다. 대중 시장에서도 ‘싱글몰트’라는 애주가들의 단어가 쓰인다는 것은 이제 술을 생산·판매하는 데 있어 높은 퀄리티 뿐만 아니라 이 술이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재밌는 콘텐츠가 필수 요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된다. 몰트(맥아)는 알콜의 주성분인 당을 머금은 보리다. 몰트를 먼저 맥주로 만들어, 이 액체를 한 증류소에서만 증류한 몰트를 싱글몰트 위스키라고 한다. 이 같은 개념을 차용해 하이트진로는 호주의 테즈매니아 섬에서 재배한 보리를 한 제맥소에서 맥아로 만들었음을 강조해 스페셜에디션을 만들었다.
테라는 싱글몰트 마케팅을 위해 맥주의 정체성까지 바꾸었다. 평소 우리가 마시는 테라는 미국식 부가물 라거 맥주에 속한다. 라거 맥주는 온도가 낮은 곳에서 발효하는 맥주다. 저온 숙성되는 술의 특징상 바디감과 풍미가 경쾌하고 음용성이 뛰어나다. 기원은 유럽 체코, 독일로 이 맥주 장르가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맥아 에 옥수수, 쌀, 전분 등 기타 곡물을 섞어 새로운 장르, ‘미국식 부가물 라거’라는 맥주가 탄생했다. 버드와이저가 대표적이다. 이 맥주는 원가절감과 대량생산에 유리하다.
맥주에 기타 곡물이 들어가면 맥주가 더 묽어지고, 물처럼 마시기 편해진다. 매일 마셔도 질리지 않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데일리 술’로 이보다 적합한 것이 없다. 이 자체가 나쁜 술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테라도, 테라의 전신인 하이트, 경쟁사 오비맥주의 카스도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것이다.

테라는 싱글몰트 콘텐츠를 살리기 위해 미국식 부가물 라거 라는 태생을 잠시 버리고 ‘올몰트 라거’로 변신했다. 기타 곡물을 섞지 않고 맥아 100%의 유럽식 라거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미 하이트진로에는 ‘맥스’라는 올몰트 라거 제품이 있는데도 테라의 정체성을 올몰트로 바꾸며 테라의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동안 테라 카스 등 국산 맥주는 맛 없다는 선입견을 벗어던질 기세다.
테라의 싱글몰트 마케팅은 5년 전이었다면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소수의 마니아 시장이었기 때문에 맥주의 장르까지 바꾸며 싱글몰트 이름을 붙인다 해도 비용 대비 마케팅 효과는 떨어졌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졌다. 주류시장은 날로 성숙해지고 있고, 온·오프라 인에서 구매할 수 있는 술의 종류 또한 셀 수 없이 다양해지고 있 다. 와인, 맥주, 전통주 등 각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신제품이 쏟아지는 속도를 따라가기가 벅찰 정도다. 생산자의 철학과 떼루아의 캐릭터를 살린 소규모 양조장, 증류소들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크래프트 버번 위스키 열풍, 영국의 크래프트 진 열풍, 한국의 소규모 전통주 양조장 열풍, 내추럴와인 붐 모두 다 다양성, 취향 시장이라는 흐름에서 파생된 현상이다. 향후 내가 마시려는 술이 무엇인지 알고 마시려는 분위기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제대로 된 공부를 바탕으로 매력적인 콘텐츠를 생산해야만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술이 어떤 제품인지 얼마나 흥미로운 스토리를 갖추었는지 정확하면서도 재미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 갈 수 없는’ 시대에 갖춰야 할 교양이다.




[출처 : 월간 외식경영]